2022-09-13 11:52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안녕하세요!
다큐팀의 최호영입니다.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경기시청자미디어센터 소식지에 저희 활동과 관련한 글이 올라갔어요. 소식을 전해 드리고자, 글을 씁니다.
경기시청자미디어센터는 작년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캠코더, 삼각대, 마이크 등 촬영장비에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직원분들의 많은 도움과 배려를 받았어요. 덕분에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류미례 감독님의 소개로, 이번 9월 경기센터 뉴스레터에 저희 활동 이야기가 실리게 되어, 후원자님들께도 소식을 전달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영화인이라면 글이 아니라 영화로 이야기해야 하는 건 아닐까 자주 생각해요. 416연대 인터뷰, 8주기 국민대회 발언 등등 여러 번 다른 수단과 매체를 통해 여러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다큐멘터리가 채 완성되기 전에 너무 다른 일들을 많이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요즘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아무래도 지금 열아홉살이라는 나이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당장 대학을 가지는 않더라도 고민들을 던져주더라고요. 사실 다큐멘터리 완성이 가장 급선무인 일이긴 하지만요.
아래는 경기센터에 기고한 글의 전문입니다. 곧 다시 소식을 말씀드릴게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1 때 '영화를 해야지' 마음을 먹고 다음엔 어떤 영화를 찍을까 고민하던 내게 턱 들어와서 나가지 않은 주제가 세월호였다. 참사를 생각하면 답답함을 느꼈다. 여러 정치적인 것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했다. 우리는 왜 기억한다고 이야기할까, 기억은 왜 중요한 걸까. 나를 가장 답답하게 했던 건 무기력함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마지막까지 남은 질문은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을 모으고, 지원사업을 준비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포에 가 세월호를 보고, 진도 팽목항에 갔다가 안산 기억 교실, 인천 가족공원 안에 있는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도 다녀왔다. 절망과 저주, 동시에 희망의 상징인 배 세월호를 보며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생각들이 절로 드는 공간들이었다. 참사 당시를 떠올리며 희생자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고, 어떨 땐 우리를 바닷속으로 끌고 내려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자주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유가족 한 분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 "너희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질문을 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바쁜 중에서도 따로 시간을 내 만나서 회의하며 열심히 질문을 만든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어떤 질문을 만들든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 채 툭툭 던지는 질문이, 같은 질문을 수십 번 듣고 반복해야 했을 유가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진심으로 참여했는지와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나는 프로젝트에 열심히 참여했지만, 진심으로 참여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장비가 너무 무겁다고 툴툴거렸었는데....
수북이 쌓인 촬영본을 보고 또 이으면서 스스로 계속 '망했다' 되뇌었다. 만들며 여러 다큐멘터리를 보고 강의를 들은 덕에 눈이 한껏 올라가 있었다. 촬영하고 바로바로 피드백하고 보완했어야 했는데. 촬영은 부족하고 내용은 아쉬웠다.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며 이곳저곳을, 또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길 들었지만 하나의 다큐멘터리에 담기에는 너무 넓고, 얕았다.
그러다가 같이 만나서 편집본을 보는 날이 왔다. '우린 망했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른 말이 터져 나왔다. "다큐멘터리는 세 번 창작된대. 기획할 때, 촬영할 때, 편집할 때. 기획과 촬영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편집에서 우리 열심히 해보자." 어떤 힘이 이런 말을 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제야 선명해졌다. '망했다'는 비관이고, '잘했다'는 낙관이다. '그래도 우리 할 수 있어.'가 어쩌면 유일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은 정말 그런 일인 것 같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것.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살아감 역시 그런 일일 것 같았다. 세상은 끔찍하기도, 잔인하기도, 냉랭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비관하지도 낙관하지도 말고, 천천히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일. 그 안에서 가장 진실인 것들을 찾고 표현해보는 일.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데다 엄청난 수모까지 당했지만, 절대 다른 사람에게 '너도 당해 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한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배웠다. 연극 연출님을 뵙고 '연극이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듣고 문화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했다. 만들면서 스스로 역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마음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았던 것 같다고 자주 마주했다. 일이나 능력에만 멘토가 필요한 건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스무살, 어른의 나이가 되지만, 어른이란 그저 할 줄 아는 게 많은 사람,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란 걸 느낀 순간들이 있다.
너무 슬프면 기억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억을 힘들어하기 때문에. 또, 사건은 과거의 어떤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만 기억은 '~하다'라는 동사로서 현재 우리의 행위와 관련 있다고 했다. 사라진 사람들을 우리는 명예롭게 기억해야 하기도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데에 방점이 있었다. 더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더는 가만히 두 손 놓고 볼 수 없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알게 되고, 배운 것들이 정말 많다. 다큐멘터리 <모어>에 출연했던 모지민님은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내가 해온 모든 공연은 결국에 사라질 것이고, 어딘가에 내 사진이 걸려 있겠으나 나는 한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라도 영화 촬영을 결심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흐르고, 정신을 차리고 살지 않으면 금세 휩쓸려 버렸다. 다큐멘터리는 내가 알게 된 소중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게 전달하고 표현하는 일이었다. 내 영상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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